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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1988 (이웃의 정, 둘째의 설움, 남편 찾기)

by 박디토 2026. 2. 23.

저도 결혼하고 나서 제일 크게 느낀 게 이웃과의 단절이었습니다. 옆집 분 성함도 모르고, 아이가 있는지도, 가족 관계가 어떻게 구성돼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어릴 적 주택에서 살 때를 떠올려보면 옆집 아줌마, 앞집 삼촌, 집 근처 고깃집 사장님들 모르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우리 엄마를 OO엄마라고 부르며 엄마, 아빠가 맞벌이로 바쁘셔서 어린 저와 언니가 집에 혼자 있을 때도 가족도 아닌 이웃끼리 막역하게 서로 아이들을 돌봐주던 '정'이 있던 시절이었습니다. 응답하라 1988을 보면서 이런 제 어린 시절이 고스란히 떠올라서 한참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1988년 쌍문동을 배경으로 한 이 드라마는 이웃사촌이라는 말이 진짜였던 시절의 따뜻함을 그대로 담아냈습니다.

이웃사촌이 진짜였던 그 시절

응답하라 1988은 2015년 11월부터 2016년 1월까지 tvN에서 방영된 20부작 드라마입니다. 신원호 연출, 이우정 작가가 만들어낸 이 작품은 최고 시청률 18.8%를 기록하며 당시 케이블 드라마로서는 파격적인 성공을 거뒀습니다. 성동일, 이일화를 비롯해 혜리, 류준열, 박보검, 고경표 등이 출연했는데, 이들의 자연스러운 연기는 정말 감탄스러웠습니다.

드라마는 서울 도봉구 쌍문동 한 골목에 사는 다섯 가족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빚보증으로 반지하에 사는 성동일네, 벼락부자가 된 김성균네, 남편을 일찍 여의고 두 아이를 키우는 김선영네, 그리고 아들과 단둘이 사는 최무성과 천재 바둑기사 아들 최택까지. 이 골목의 아이들 덕선, 정환, 선우, 동룡, 택은 태어날 때부터 함께 자란 소꿉친구로 늘 택이의 방에 모여 라면을 끓여 먹고 비디오를 돌려보며 울고 웃습니다.

저희 집에도 골드스타 티비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사라진 금성 브랜드인데, 다이얼을 돌려서 채널을 바꿔야 했던 그 티브이가 드라마에 나와서 정말 반가웠습니다. 엄마 아빠가 맞벌이로 바쁘실 때 이웃집 아줌마들이 자연스럽게 우리를 돌봐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응답하라 1988은 바로 그런 '정'이 살아있던 시절을 완벽하게 재현했습니다.

전국 둘째들의 눈물샘을 터뜨린 덕선이의 설움

주인공 성덕선은 혜리가 연기했는데, 저는 덕선이를 보면서 제 모습을 너무 많이 발견했습니다. 저도 언니 밑에서 자란 둘째라서 그런지 덕선이의 감정선이 제 이야기처럼 느껴졌습니다. 공부는 못하지만 정 많고 쾌활한 덕선이는 늘 양보를 강요받으며 자랐습니다. 새 옷은 언니가 먼저 입고, 생일파티도 언니와 날짜가 비슷하다는 이유로 항상 합쳐서 했습니다.

극 중에서 덕선이가 따로 생일파티를 하고 싶다며 감정이 폭발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저도 그 장면에서 같이 펑펑 울었습니다. 먹는 것도, 입는 것도, 신발도 다 물려받아야 했던 둘째의 설움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모습이 너무 공감됐기 때문입니다. 항상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고, 양보해야만 했던 경험이 있는 분들이라면 덕선이의 그 울분을 충분히 이해하실 겁니다.

특히 언니 역할로 나온 성보라의 사이코스러운 면모도 우리 언니를 보는 것 같아서 웃프기도 했습니다. 쌍문동 5인방 중에서는 김정환 역의 류준열이 '어남류(어차피 남편은 류준열)' 신드롬을 일으켰고, 최택 역의 박보검은 바둑판 앞에서는 냉철하지만 친구들 앞에서는 순하고 어리숙한 반전 매력을 보여줬습니다. 성선우는 일찍 아버지를 여의었지만 동생 진주를 챙기는 듬직한 모습으로, 류동룡은 유쾌한 분위기 메이커로 각자의 개성을 살렸습니다.

응답하라 1988

모두를 잠 못 이루게 한 남편 찾기의 결말

응답하라 시리즈의 가장 큰 재미는 여주인공의 남편이 누구인지 찾는 과정입니다. 드라마 내내 2015년의 성인 덕선과 남편이 과거를 회상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면서 시청자들의 궁금증은 계속 증폭됐습니다. 초중반까지는 정환이 덕선을 향한 마음을 드러내는 장면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버스 안에서 덕선을 지켜주고, 핑크색 셔츠를 선물하던 에피소드는 정말 심장을 뛰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정환은 결정적인 순간마다 망설였습니다. 사랑보다 우정을 택하며 한발 물러섰고, 그 사이 택이가 솔직하게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며 덕선에게 다가갔습니다. 결국 덕선의 남편은 최택으로 밝혀졌는데, 이 결말은 방영이 끝난 후에도 엄청난 논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많은 어남류 지지자들이 아쉬워했지만, 순수하고 용기 있게 사랑을 쟁취한 택의 모습도 충분히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제 생각엔 이 드라마가 단순히 남편 찾기 미스터리로만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더 좋았던 것 같습니다. 가족의 사랑, 이웃의 정, 친구와의 우정, 그리고 서툰 청춘의 성장통까지 모든 걸 담아냈기 때문입니다. 핵가족화되고 개인주의가 만연한 지금, 응답하라 1988이 보여주는 따뜻한 공동체의 모습은 큰 울림을 줍니다.

응답하라 1988은 1988년을 배경으로 하지만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부모님의 끝없는 사랑, 친구와의 우정, 첫사랑의 설렘 같은 보편적인 감정을 다루기 때문에 모든 세대가 공감할 수 있습니다. 지금 이웃집 사람 얼굴조차 모르며 살고 있다면, 이번 주말 쌍문동 골목길로 추억 여행을 떠나보시길 추천합니다. 잊고 있던 '정'의 가치를 다시 떠올리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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