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넷플릭스에서 꽤 화제가 되고 있는 드라마가 있습니다. 바로 월간남친입니다. 처음에는 솔직히 “이거 너무 유치한 거 아니야?” 싶었습니다. 넷플릭스 1위라길래 궁금해서 틀어봤는데, 보다 보니 뇌를 비우고 보기에는 딱 좋은 드라마더라고요. 무엇보다 제가 블랙핑크 지수를 좋아해서, 예쁜 얼굴 보는 재미만으로도 일단 절반은 성공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드라마를 보다 보니 단순히 가볍게 웃고 넘기기만 하긴 어렵더라고요. 가상 연애를 한다는 설정 자체가 꽤 신박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제 20대 초반 연애 기억들이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저에게 단순한 로맨틱 코미디라기보다, 예전 연애 연대기를 떠올리게 만든 묘한 작품이었습니다.
가상 연애 구독 서비스라는 발칙한 설정
드라마 속 미래는 직장 생활에 지쳐 연애할 여유조차 없는 인물입니다. 그런 미래가 선택한 것이 바로 가상 연애 구독 서비스 ‘월간남친’입니다. 월정액으로 원하는 콘셉트의 남자친구를 만나고, 감정 소모는 줄이면서 설렘만 가져가는 시스템이죠.

설정만 들으면 황당한데, 또 요즘 시대를 생각하면 아주 허무맹랑하게 느껴지지도 않았습니다. 우리가 어릴 때만 해도 스마트폰이라는 것도 공상과학 같았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너무 당연한 현실이 됐고요. 그런 걸 생각하면 언젠가 진짜 이런 연애 서비스가 생겨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드라마를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도 했습니다. “나도 이런 시스템을 썼다면 예전 연애를 좀 더 잘할 수 있었을까?” 물론 답은 잘 모르겠습니다. 현실 연애는 버튼 몇 번 누른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니까요. 그래도 가끔은 상상하게 되더라고요.
드라마를 보며 떠오른 내 20대 초반 연애
드라마에서 군대를 기다려준 남자친구 이야기가 나오는 장면이 있었는데, 그때 제 20대 초반이 그대로 떠올랐습니다. 저도 대학에 들어가서 첫 연애를 했거든요. 한 살 연상의 과 선배와 CC를 했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 풋풋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부끄럽기도 합니다. 그때는 연애 하나에 세상이 다 걸린 것처럼 굴었거든요. 그 오빠는 저와 연애하느라 군대를 조금 늦게 갔고, 저는 또 그 군대 생활을 기다려줬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며 결국 권태기가 와서 헤어졌죠.
제일 놀라운 건 그때 제가 했던 행동입니다. 지금 같으면 상상도 못할 텐데, 그 남자친구 부모님과 할머님과 함께 논산 훈련소 수료식까지 갔었습니다. 지금 떠올리면 진짜 너무 오글거려서 웃음이 나와요. “내가 왜 그렇게까지 했지?” 싶기도 하고요.
그래서인지 월간남친을 보면서 나오는 오글거리는 대사들이 마냥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연애를 하면 평소에는 절대 하지 않을 말도 너무 자연스럽게 하게 되잖아요. 남자친구와 있을 때만 통하는 이상한 말투, 괜히 간질간질한 표현들, 남이 들으면 손발 오그라들 만한 대사들까지요.
이 드라마는 그런 연애의 민망함을 제3자 시점으로 보여주는 느낌이었습니다. 가상 연애지만, 그 안에서 오가는 말과 행동은 오히려 현실 연애의 민망한 진심을 잘 드러내고 있더라고요.
화려한 판타지와 현실 로맨스 사이
월간남친의 매력은 가상 연애 세계가 굉장히 화려하다는 점입니다. 미래를 둘러싼 남자 캐릭터들은 하나같이 판타지처럼 완벽하고, 상황도 드라마틱합니다. 너무 뻔하고 너무 유치한데, 또 그래서 계속 보게 됩니다. 저도 보면서 “와 진짜 유치하다” 하면서 다음 화를 바로 눌렀습니다.
다만 그런 화려한 가상 세계가 너무 강하다 보니, 현실 남주 경남과의 서사는 상대적으로 밋밋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습니다. 가상 속 로맨스는 즉각적으로 도파민을 주는데, 현실의 관계는 아무래도 느리고 투박하니까요.
그런데 저는 오히려 그 부분이 드라마의 핵심이라고 느꼈습니다. 프로그래밍된 완벽함은 눈길을 끌지만, 결국 오래 남는 건 어설퍼도 진심이 있는 현실 쪽이더라고요. 제 20대 연애도 그랬습니다. 화려하진 않았지만, 군대 가는 남자친구를 기다려주고 수료식까지 따라갔던 그 감정은 분명 진심이었으니까요.

도파민 중독 시대에 던지는 질문
이 드라마를 보며 가장 흥미로웠던 건 가상과 현실의 경계에 대한 문제였습니다. 요즘은 짧고 빠르고 자극적인 콘텐츠에 익숙해져 있잖아요. 게임도, 숏폼도, SNS도 결국은 쉽게 도파민을 주는 구조이고요. 월간남친 속 가상 연애 역시 같은 맥락처럼 느껴졌습니다.
현실의 사랑은 번거롭습니다. 서로의 기분을 살피고, 상처를 주지 않으려 애쓰고, 오해를 풀고, 감정을 주고받는 긴 과정이 필요합니다. 솔직히 말하면 감정 노동이죠. 그런데 월간남친 속 연애는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원하는 상황만 고르고, 원하는 설렘만 취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연 감정 노동 없이 얻는 설렘이 진짜 사랑일까? 편하고 빠르고 효율적인 관계만 찾다 보면, 결국 현실의 사람을 견디는 힘을 잃게 되는 건 아닐까 하고요.
예전에 어디선가, 게임에 너무 익숙해진 청소년들이 현실의 사람을 마치 NPC처럼 대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처음엔 과장된 이야기 같았는데, 월간남친을 보다 보니 그 말이 떠올랐습니다. 가상에 익숙해질수록 현실은 더 느리고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월간남친은 유치한 로맨틱 코미디처럼 보여도, 묘하게 지금 시대를 비추는 질문을 던지는 드라마 같았습니다. 저는 이 드라마를 보며 웃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나는 어떤 사랑을 원하는 걸까?”라는 생각도 하게 됐습니다.
월간남친은 분명 유치합니다. 그런데 그 유치함이 묘하게 중독성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요즘 시대의 연애와 관계를 돌아보게 만드는 메시지도 숨어 있습니다. 삶이 팍팍하고 머리가 복잡할 때, 잠시 뇌를 비우고 보기에는 꽤 괜찮은 드라마였습니다. 다만 다 보고 나면 한 번쯤은 스스로에게 물어보게 될지도 모릅니다. 나는 진짜 어떤 사랑을 원하는지, 그리고 그 사랑을 위해 어느 정도의 감정 소모까지 감수할 수 있는지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