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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조 후기: 정장 비주얼과 B급 개연성 사이

by 박디토 2026. 3. 2.

주말마다 남편이 정장을 입고 나가는 모습을 보며 ‘오늘은 또 어떤 일정이지?’ 하고 괜히 한 번 더 쳐다보는 게 제 일상입니다. 저는 남편의 정장 핏을 꽤 좋아하는 편이거든요. 큰 키에 긴 다리, 단정하게 떨어지는 실루엣을 보면 괜히 기분이 좋아집니다. 그래서였을까요. 넷플릭스에서 <빈센조>를 보다가 송중기가 입고 나오는 정장 핏에 시선이 꽂혀버렸습니다. 남편 다음으로 멋있어 보이더라고요. 드라마를 보다가 ‘저 정장 브랜드 뭐지?’ 하고 검색까지 했을 정도니까요.

송중기 하면 <성균관 스캔들> 시절의 여리여리한 이미지가 먼저 떠올랐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완전히 다른 얼굴을 보여줍니다. 선하지 않은 존재, 마피아. 그런데 또 나름의 정의를 추구하는 ‘착한 악당’ 같은 인물입니다. 말이 모순 같지만, 막상 보다 보면 그 표현이 딱 맞습니다.

마피아 콘실리에리라는 설정의 신선함

빈센조 까사노는 이탈리아 마피아 조직에서 ‘콘실리에리’ 역할을 맡습니다. 콘실리에리란 단순한 변호사가 아니라, 보스의 최측근으로서 전략을 설계하고 조직의 방향을 조율하는 핵심 참모를 의미합니다. 영화 <대부>의 톰 헤이건이 바로 그 대표적인 예죠.

드라마 초반 20분은 이 캐릭터를 정의하는 데 집중합니다. 보스의 장례식 와중에 경쟁 조직의 포도밭을 불태워버리는 장면은, 피가 튀지 않아도 충분히 잔혹하고 냉정합니다. 그 장면을 보면서 저는 ‘아, 이 드라마는 단순 액션물이 아니라 심리전 중심이겠구나’ 하는 예감이 들었습니다.

한국으로 건너온 이유는 금가프라자 지하에 숨겨둔 금괴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곳에는 이미 다양한 사람들이 터전을 잡고 살아가고 있죠. 피아노 학원, 전당포, 분식집까지. 처음에는 금만 챙겨 떠나려던 빈센조가 점차 이들과 얽히며 변해가는 과정이 이 드라마의 중심 서사입니다.

박재범 작가표 다크 히어로의 진화

빈센조

박재범 작가는 늘 완벽하지 않은 주인공을 그려왔습니다. <김과장>의 김성룡도, <열혈사제>의 김해일도 전형적인 영웅과는 거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빈센조는 한 단계 더 나아갑니다. 그는 스스로를 ‘악’이라고 인정하는 인물이니까요.

다크 히어로란 도덕적으로 완벽하지 않지만 나름의 방식으로 정의를 실현하는 인물을 뜻합니다. 빈센조는 “나는 악이니까 악을 잘 안다”라고 말합니다. 정의롭다고 포장하지도 않습니다. 그 점이 오히려 더 설득력 있게 다가왔습니다.

인상 깊었던 설정은, 그가 사람을 처리한 후 악몽을 꾼다는 점이었습니다. 냉혹한 마피아이지만 죄책감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닙니다. 차영(전여빈)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이 죽을 때마다 놀라고 괴로워합니다. 반면 장준우와 최명희는 살인을 업무처럼 대하죠. 이 대비가 빈센조를 ‘완전한 악’과 구분 짓는 지점이라고 느꼈습니다.

요즘 한국 드라마에는 자력구제 서사가 많습니다. 법이 해결해주지 않으니 내가 직접 복수한다는 구조죠. 하지만 <빈센조>는 그 과정에서도 이것 역시 또 다른 범죄라는 인식을 놓치지 않습니다. 저는 이 균형감이 꽤 인상적이었습니다.

금가프라자 사람들과의 관계 설정

빈센조의 특별한 점은 피해자들을 수동적으로 보호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바벨 피해자들을 방화에 직접 참여시키고, 금가프라자 주민들에게 싸우는 법을 가르칩니다. 이른바 ‘임파워먼트’ 방식입니다. 약자에게 힘을 실어주고 스스로 싸울 수 있게 만드는 접근이죠.

홍유찬 변호사가 운영하던 ‘지푸라기’ 법률사무소라는 이름도 상징적입니다. 구덩이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고 나오길 바라는 마음. 홍차영이 아버지의 죽음 이후 이 사무소를 이어받는 과정은 전여빈의 연기로 설득력을 얻습니다. 엘리트 변호사에서 현실을 마주하는 인물로의 변화가 자연스럽게 느껴졌습니다.

금가프라자 주민들 역시 변합니다. 처음엔 “내 코가 석 자인데 무슨 정의냐”던 사람들이 점차 건강한 오지랖을 배우게 됩니다. 거창한 정의가 아니라, 일상 속 작은 실천들. 저는 이 부분이 은근히 오래 남았습니다.

정장 비주얼과 B급 개연성 사이

송중기의 정장 비주얼은 정말 훌륭합니다. 액션을 해도 흐트러지지 않는 실루엣을 보며 ‘정장 탄력성 좋네…’ 하고 혼잣말을 했습니다. 속으로 남편에게도 저런 핏을 맞춰주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고요.

하지만 아쉬운 점도 분명합니다. 스토리 전개는 깔끔한데, 이를 이끄는 수단이 종종 B급 감성입니다. 억지스러운 개연성과 과한 코미디 코드가 몰입을 깨는 순간이 있었습니다. 특히 그 ‘비둘기’ 장면은… 저는 정말 납득이 안 됐습니다. 그 전까지는 참고 넘겼는데, 그 장면만큼은 선을 넘었다고 느꼈습니다.

연출 역시 호불호가 갈립니다. 빈센조 관련 장면은 세련되고 긴장감 넘치는데, 상가 코미디 파트는 유치하게 느껴질 때가 있었습니다. 극본 문제인지 연출 문제인지 단정하긴 어렵지만, 아쉬움이 남는 건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배우들의 연기는 정말 좋았습니다. 주연뿐 아니라 조연들까지 캐릭터를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특히 송중기와 전여빈의 티키타카는 스크린 너머로 호흡이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밝은 척하지만 슬픈 인물들의 결을 잘 살려냈다고 생각합니다.

<빈센조>는 완벽한 드라마는 아닙니다. 하지만 박재범 작가표 ‘악의 방식으로 전하는 메시지’, 배우들의 케미스트리, 그리고 무엇보다 정장 입은 송중기의 비주얼까지. 1회에서 포기하기엔 아까운 작품입니다. 억지 개연성 몇 번 눈 감아주면 충분히 즐길 수 있습니다. 저처럼 10초씩 넘기면서 보다 보면, 어느새 정주행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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